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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대봉동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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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최고관리자 조회 1,655회 작성일 21-03-2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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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대봉동 고인돌 발굴과 90년대 재발굴, 그리고 이전

 


대구지역의 중심을 관통하는 신천 주위를 따라 많은 고인돌군이 분포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대봉동 고인돌군은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인들에 의해 수차례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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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대구중학교 앞 고인돌 발굴 <국립중앙박물관>

 


이 대봉동 고인돌군은 당시 일본인 조사자에 의해 제1구역부터 제5구역까지 구분되어 보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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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대봉동 4구역 3고인돌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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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발굴조사 전 덮개돌       1936년 덮개돌 이동 전경           1936년 덮개돌 이동 후    



 이후 해방과 도시개발주택지역의 확대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고인돌이 위치하던 곳은 모두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 중 제4구역 1, 2, 3고인돌은 1990년 경북대학교 박물관의 재발굴이 시행될 때까지 이천동 297-1번지 윤씨 집 마당에 보존되어 있었다.

 

특히 4구역 3고인돌은 대봉동 고인돌군의 덮개돌 중 최대 크기이고 1936년 발굴조사 이후에도 원래의 위치에서 보존되어 왔다

하지만 1990년 고인돌의 덮개돌을 옮겨내고 새로 건물이 들어설 계획이 있다는 제보로 인해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당시 한국 고고학 사상 유례가 없던 재발굴 조사를 통해 

1936년 발굴조사 당시의 여러 가지 오류들을 찾아낼 수 있었으며 새로 5기의 유구를 발견하고, 유물을 수습하였다

일부는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주택 아래 위치하여 조사를 실시할 수 없었지만1993년 주택 소유주가 새 건물을 지으려 할때 조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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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차 재발굴 전 유적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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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발굴 후 유적 전경                                대구중학교 앞 고인돌 발굴지 


 

재발굴조사 이후 대봉동 제4구역 고인돌은 경북대학교 박물관 야외전시장인 월파원으로 이전 복원되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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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파원에 이전 복원된 대봉동 제4구역 3고인돌